표준국어대사전에서 '지능'은 ‘새로운 대상이나 상황에 부딪혀 그 의미를 이해하고 합리적인 적응 방법을 알아내는 지적 활동의 능력’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이 정의에 입각해 식물을 바라본다면 식물이 지능이 있다는 것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할 것입니다.
식물은 본질적으로 움직일 수 없고 초식동물 등의 공격에 쉽게 당할 수 있기 때문에 동물에서 나타나는 '뇌'와 같이 중요한 핵심요소를 특정 부위에 둘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일부 부위가 손상을 입더라도 생존에 문제가 없도록 진화해 왔습니다.
사실 식물의 지능에 대한 내용은 찰스 다윈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의 논문 < 식물의 운동력 >에서는 “식물의 뿌리에는 하등동물의 뇌와 비슷한 것이 있다. 이것은 운동을 제어하는 통제센터와 같다"고 했습니다. '뇌와 비슷한 것'이란 바로 식물의 근단을 의미하는 것으로, 식물 뿌리에는 수천 개의 근단이 있습니다.
2008년, 스위스 연방윤리위원회는 < 식물의 존엄성에 관한 보고서 >를 만장일치로 발표한 바 있습니다. 이 보고서는 '식물도 생명을 가진 존엄한 존재이므로 존중받을 권리가 있고, 인간은 그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공표했습니다.
[식물의 존엄성에 관한 보고서 다운로드(클릭)]
에콰도르는 2008년 세계 최초로 자연에 권리를 부여하는 자연권 헌법을 국민투표를 거쳐 제정했습니다. 자연에 이런 권리를 부여한 에콰도르의 새 헌법 조항은 단순한 선언적 조항이 아닙니다. 국가에 생물종의 멸종과 생태계의 파괴를 가져올 수 있는 행동들을 예방하고 제한할 의무를 부여하고, 국가가 이런 의무를 다하지 않았을 경우에는 시민들이 자연을 대신해서 소송까지 제기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입니다.
사진에 보이는 모니카 갤리아노는 식물이 배가 고프도록 어두운 곳에 두었습니다. 그런 뒤 식물한테 가끔씩 파란 불빛을 비춰주었습니다. 빛은 광합성을 위한 에너지이며 완두콩은 제대로 굶주린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당연하게도, 완두콩은 빛이 나오는 곳을 향해 잎을 벌렸습니다.
이어서 갤리아노는 공기를 불어넣은 다음 빛을 비춰주는 방법을 시도했습니다. 그리고 이 실험의 마지막 단계로 빛을 비춰주지 않은 채 공기만 불어넣었습니다. 그러자 식물의 잎이 공기가 흡입되는 쪽으로 향했는데, 그곳에서 곧 빛이 들어올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면 절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입니다.
이 식물은 광합성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자극인 바람을 빛이 부속시켰기 때문입니다. 이는 달리 표현하면 완두콩이 연결 또는 연상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는 뜻이 됩니다. 갤리아노의 견해에 따르면, 이와 같은 능력은 많은 식물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고 합니다.
이런 결과를 통해 우리는 식물이 우리가 추측했던 것보다 훨씩 복잡하게 배울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 '나무의 긴 숨결(페터 볼레벤, 2022) 재구성 < 독일어 원문 링크(클릭) >
스위스 연구기관 소속 연구원들은 2003년 숲속 여러 곳에서 자라는 소나무들을 선별해 물을 주었습니다. 인위적으로 물을 주었으므로, 이 나무들은 부족함 없이 응석받이로 자랐습니다. 10년이 지난 2013년, 연구원들은 숲의 일부 구역에서 물을 주는 일을 그만두었습니다. 그런 다음 응석받이 소나무 씨와 물이 부족해 건조한 환경에서 지내야 했던 소나무 씨를 채집해 비닐하우스에 뿌렸습니다. 그러자 항상 물을 주었던 어미 나무로부터 채취한 후손은 별도로 물을 공급받지 않은 소나무의 어린 후손보다 건조한 상태를 훨씬 못 견뎠습니다. 이는 나무가 자신의 지식을 바로 다음 세대에 물려준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최초의 증거가 되었습니다.
Bose, A.,ed al.: Memory of environmental conditions across generations affects the acclimation potential of scops pine, in: Plant, Cell & Environment, Volume 43, Issue 5, 28.01.2020, http://doi.org/10.1111/pce.13729.
- '나무의 긴 숨결(페터 볼레벤, 2022)' 재인용, 재구성
아프리카 기린은 우산아카시아를 먹습니다. 아카시아 입장에서는 대식가 기린이 불청객입니다. 그래서 이 기린을 쫓아버리기 위해 기린이 자신에게 입을 대자마자 바로 유독 물질을 잎으로 뿝어냅니다. 몇 개 먹어보지도 못하고 맛이 없어져 기린은 다른 나무로 갑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바로 옆에 있는 나무에게 가지 않고 굳이 100미터나 떨어진 곳까지 가서 다시 식사를 시작합니다.
그 이유는 바로 나무가 서로 소통하기 때문입니다. 잎을 뜯어먹힌 아카시아 나무는 유독 물질을 분비함과 동시에 에틸렌 가스를 분출해서 주변 동료 나무에게도 알려줍니다. 그래서 그 옆에 잎을 뜯어먹하지 않은 나무들도 똑같이 유독물질을 뿜고 있기 때문입니다. 경험으로 이 사실을 알고 있는 기린은 일부러 서로 아직 소통하지 않은 다른 나무를 찾아 멀리 가는 것입니다.
- '나무수업(페터 볼레벤, 2015)' 재구성
대표적인 식충식물 파리지옥은 매우 향기롭고 달콤한 분비물을 냅니다. 그러다 곤충이 다가오면 잡아먹습니다.
그러나 곤충을 잡는 것은 에너지가 많이 소비되기 때문에 곤충이 한가운데 들어올 때까지 기다리고, 가짜가 올 때는 포충엽을 오므리지 않습니다.
가짜인지 아닌지는 일정한 기준을 가지고 구분을 합니다. 덫이 닫히려면 표면에 있는 3개의 작은 털이 있는데 이 중 2개 이상을 건드려야 하며, 건드리는 시간 간격이 2초를 초과하면 덫을 닫지 않습니다. 가짜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정리하면, 3개의 털 중 2개 이상이 2초 이하의 간격을 두고 건드릴 때에만 진짜 곤충으로 생각하고 덫을 닫습니다. 즉, 파리지옥은 숫자를 셀 줄 안다는 뜻입니다.
덫에 걸려든 곤충이 몸부림치며 털을 심하게 건드리면 더욱 단단히 오므리고, 더 이상 움직임이 없으면 죽었다고 판단하고 소화효소를 분비합니다. 파리지옥 외에도 현재까지 육식식물로 분류된 식물은 약 600종이 넘습니다.
- '식물의 뇌(스테파노 만쿠소, 2015)' 재구성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 출신 연구원 마리아 크레이파와 호르헤 카살은 녹색 식물을 실험실에서 재배했고, 이를 통해 이 식물이 잎의 방향을 조절함으로서 서로를 배려한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식물은 촘촘하게 붙어서 성장하면 이웃 식물한테 그늘을 만들어 영양분을 덜 섭취하게 하여 이웃 식물이 자연히 약해지고 경쟁이라는 점에서 우위를 점하게 됩니다.
그러나 식물은 이웃 식물이 친척이라는 것을 알면 전혀 다르게 행동했습니다. 식물은 친척 나무에게는 굶어죽지 않도록 방향을 배려하며 잎을 펼쳤습니다.
사실 친적을 배려하는 것은 자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입니다. 식물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Crepy, M. and Casl, J. : Photoreceptor-mediated kin recognition in plants, in: New Phytologist (2015) 205:329-338 doi:10.1111/nph.13040.
- '나무의 긴 숨결(페터 볼레벤, 2022)' 재인용, 재구성
캐나다 맥마스터 대학교의 연구진은 두 개의 화분을 준비하여 한 화분에는 동일한 모계의 서양갯냉이 씨앗 30개를, 다른 화분에는 다른 모계의 서양갯냉이 씨앗 30개를 각각 심었습니다. 그리고 두 화분에서 자라는 식물의 행동을 관찰한 결과, 종전에는 동물에게만 존재한다고 여겨졌던 매커니즘들이 여럿 발견되었습니다. 모계다 다른 씨앗들은 영토와 수분확보를 위해 경쟁적으로 뿌리를 뻗었습니다. 그러나 모계가 같은 씨앗들은 뿌리를 덜 뻗으며 제한된 공간에서 공존하고 남는 에너지는 지상부에 투자하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연구진은 식물은 친척을 구분하고 이들과는 경쟁보다 협력을 선택하며 차등대우한다는 것을 밝혀 냈습니다.
- '식물의 뇌(스테파노 만쿠소, 2015)' 재구성
우리가 식물의 촉각을 이해할 수 있는 대표적인 식물이 미모사입니다. 미모사는 손으로 쓰다듬으면 잎을 움츠립니다. 이를 감촉성이라고 하는데, 몇 초만에 일어납니다.
대부분 미모사를 보고 조건반사로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바람에 날리거나 물에 잠기거나 할 경우에는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오직 뭔가 직접 닿을 때만 반응을 합니다.
그런데 물방울을 계속 떨어뜨리면 한두번은 움츠리며 반응을 하다가 그 이후에는 위험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반응하지 않습니다.
또한 과학계의 거목인 장 바티스트 라마르크(1744-1829)는 미모사의 학습 능력을 처음으로 알아차린 사람입니다. 미모사를 카트에 싣고 파리 시내를 다니는데, 카트가 덜컹거릴 때마다 미모사들이 일제히 잎을 움츠렸지만, 조금 시간이 지나자 진동이 더 이상 위험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움츠리는 행동을 멈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미모사는 위험하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 학습하고, 에너지 낭비를 줄이기 위해 쓸데없이 잎을 움츠리는 행위를 중단했던 것입니다.
- '식물의 뇌(스테파노 만쿠소, 2015)' 재구성